한국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많다. 최근 여러 브루어리에서 만들어내는 크래프트 비어까지 합치면 한도 끝도 없지만, 그걸 제외해도 다양한 맥주가 있었다. 대학생 시절 친구에게 속아 넘버원이라 굳게 믿고 끝도 없이 마셨던 카스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맥주들. 물론 지금 하고 비교하면 굉장히 폭이 좁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쏘맥으로 말아 먹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종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쏘맥으로 말기 위해 그렇게 라거 천지였나 싶기도 하다. 소주에 에일을 섞을 수는 없을 테니까. ㅎㅎㅎㅎ.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처럼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의 시대를 청산한 건 클라우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클라우드 이후에 나온 거라 조금 분했지만... ㅎㅎㅎㅎ. 클라우드 이전이라면 아마 그냥 수긍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클라우드는 진짜였다. "물 타지 않은 맥주"라는 광고 카피에 깊은 공감을 할 만큼, 그간 마셨던 밍밍한 라거류와는 완전히 다른 맥주였다. 그 시기가 기린맥주를 시작으로 일본 맥주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클라우드를 마셨을 때 느낌은 "오! 이거 밀리지 않겠는데"였으니.... 기린맥주하고 같은 가격으로 붙어도 고민을 할 법한 수준의 맥주였다. 클라우드는. 어쩌면 기린맥주로 진짜 맥주 맛에 눈을 떴기 때문에 클라우드가 그렇게 팍 꽂혔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클라우드의 출시는 한국 맥주 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한국 맥주는 클라우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클라우드는 단순히 맥주를 넘어 일종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맥주 맛을 넘어서 다양함 함의를 지닌 물건으로... 한 번은 김구라가 라디오 스타에서 "우리 인간적으로 회식할 때 맥주 클은 시켜줍시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맛을 넘어선 의미를 지닌 맥주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회식에서 쪼잔한 사장의 기준은 클라우드 주문 여부로 갈렸다. 물론 끝까지 카스를 고수하며 취향론을 설파하는 사장들이 있었지만 결국 선택은 클라우드였다. 어쩌면 클라우드는 반대로 사장들에게 현답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입맥주를 주문하기엔 부담이 되는 것을 합리적인 가격과 맛으로 충족 시켜줬으니. 사장들의 체면과 지갑을 동시에 살려준 효자 같은 맥주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밍밍한 라거류 보다 맛있는 맥주를 사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맥주였으니까 클라우드는.
클라우드가 출시와 함께 한참 기세를 올릴 때 꽤나 마셨다. 사실은 그때가 딱 맥주에 눈을 뜨며 혼술을 하던 반백수 시절이라 더 그랬던 것 같지만. ㅎㅎㅎㅎㅎ. 집에 맥주병이 100개 정도 쌓이면 클라우드:기린맥주:기타 등등이 대략 4:4:2 정도 비율이었다. 그해는 진짜 클라우드와 기린맥주의 각축전 이었다. 결국 클라우드가 간발의 차이로 승리. 나에게 맥주 맛을 새롭게 알려준 스승 같은 기린맥주를 제쳤다는 건 그만큼 맛있었다는 이야기다. 클라우드는 정말 국뽕을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봐도 잘 만든 맥주다. 지금은 크래프트 비어와 에일에 완전히 빠져버려서 이젠 그렇게 자주 마시진 않지만, 가끔 마시면 그래도 제법 맛이 난다. 처음 마셨을 때도 생각나서 약간 정겹기도 하고...
ps - 클라우드와 함께 그 시절 맛있게 마셨던 한국 맥주는 퀸즈에일(엑스트라 비터, 블론드, 둘 다)였다. 물론 지금은 사실상 단종 상태 같지만. 내게 있어서 제대로 된 한국 맥주의 시작은 클라우드와 퀸즈에일 이었다. 퀸즈에일이 다시 마트에 깔리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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